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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VOT 피벗 1부 아날로그에서 인터넷까지 : 제 0 변곡점아날로그 시대~ 1994년 · 종이, 팩스, 텔렉스의 세계

by baishushu 202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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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V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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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아날로그에서 인터넷까지

 

 

 

 

 

 

 

 

 

 

0 변곡점

아날로그 시대

~ 1994  ·  종이, 팩스, 텔렉스의 세계

 

0. 변곡점 이전의 세계를 기억하는가

모든 것이 손으로 쓰여지던 시대

1990년대 초, 국제 비즈니스의 일상은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다. 아침은 텔렉스(Telex)와 팩스 확인으로 시작됐다. 텔렉스는 전화선을 이용해 문자를 전송하는 장치였다. 소리를 내며 천공된 종이 테이프가 출력되고, 그것을 해독해 메시지를 읽었다. 속도는 느렸고, 오류도 잦았다.

팩스는 그보다 편리했다. 그러나 수신자가 팩스 기계 앞에 있어야 했고, 종이가 떨어지면 수신이 안 됐다. 국제 팩스는 비용이 상당했다. 긴급한 문서를 보낼 때는 DHL이나 페덱스로 실물을 항공 발송했다. 중요한 서류가 통관에서 막히는 바람에 입찰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는 그 시절 비즈니스 현장에서 종종 들리는 소식이었다.

컴퓨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MS-DOS 기반의 검은 화면에서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했다. 'DIR', 'COPY', 'FORMAT' 같은 명령어를 외우지 못하면 컴퓨터를 쓸 수 없었다. 이 명령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 프린터도 있었지만 인쇄 한 장의 비용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다.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요란한 소리가 사무실의 배경음이었다.

  1990년대 해외 출장의 일상그 시절을 아는가

해외 출장 준비물 (1990년대 기준):

  - 명함첩: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모아 수기로 정리

  - 서류 가방: 제안서, 도면, 회사 브로셔를 실물로 지참

  - 현지 통화: 은행에서 미리 환전 (ATM이 없거나 작동 안 하는 경우 많음)

  - 호텔 전화번호부: 현지 연락처를 사전에 확보

  - 두꺼운 수첩: 일정, 연락처, 메모를 모두 손으로

 

출장 중 본사 연락 방법:

  - 호텔 방 전화기로 국제전화 (분당 수천~수만 원)

  - 현지 팩스 센터에서 문서 발송

  - 긴급한 경우 국제전보 (Telegram) 발송

 

당시의 비효율은 지금 보면 믿기 어렵지만,

그 시절 비즈니스맨들은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불편함이 경쟁 우위를 만들었다. 그 불편함을 더 잘 견디는 자가 이겼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낯설겠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도 비즈니스는 돌아갔다. 계약은 성사됐고, 프로젝트는 수행됐으며, 기업은 성장했다. 도구가 원시적이었을 뿐, 사람들은 그 도구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비즈니스맨들이 쌓은 가장 큰 자산은 디지털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었다. 관계였다.

정보는 권력이었다그 권력은 소수가 쥐었다

이 시대에 정보는 극도로 비대칭 적이었다. 어느 나라에 어떤 프로젝트가 발주되는지, 발주처의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 경쟁사가 어떤 전략을 쓰는지. 이 모든 것은 직접 현지에 가야만 알 수 있었다. 출장 한 번이 수백만 원이 드는 시절이었다. 정보를 먼저 가진 자가 시장을 지배했다.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정보는 항상 권력의 핵심이었다. 기원전 7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은 점토판에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그것을 독점함으로써 시장을 장악했다. 중세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라틴어 성경을 독점함으로써 지식과 신앙의 헤게모니를 유지했다. 권력과 정보 독점의 역사는 항상 함께 흘렀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종합상사와 다국적 기업의 지사망이었다.

 

  종합상사의 황금기정보를 파는 비즈니스

1970~90년대 한국 종합상사들의 전성기는 정보 독점의 시대와 정확히 겹친다.

삼성물산, 대우인터내셔널, 현대종합상사, LG상사, SK상사...

이들은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현지 정보를 본사로 공급하는 정보 네트워크였다.

 

당시 종합상사 주재원의 역할:

  현지 발주 정보 입수 (어느 공사가 곧 발주될 것인가)

  발주처 의사결정자와 관계 형성

  경쟁 구도 파악 (어느 나라 기업이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는가)

  현지 규정·관행 파악 (어떤 서류가 필요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본사에 보고, 전략 수립 지원

 

이 정보들을 얻기 위해 주재원은 현지 공무원, 발주처 직원, 협력사, 경쟁사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주재원의 몸값은 그가 가진 정보망의 넓이와 깊이에 비례했다.

 

그러나 이 황금기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조용히 저물기 시작했다.

주재원이 3년에 걸쳐 쌓은 '현지 발주 정보'

어느 날 발주처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되기 시작했을 때,

그 정보의 독점 가치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기회였다. 정보 독점이 사라지자, 그 독점에 의존했던 기업들은 존재 이유를 잃었다. 그러나 그 독점 뒤에 숨어 있던 진짜 가치들, 즉 신뢰, 관계, 현장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진짜 가치를 알아챈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서도 살아남았다.

구텐베르크의 교훈정보 독점이 깨질 때

정보 독점이 기술에 의해 깨진 역사는 오래됐다. 그 중 가장 극적인 사례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금속활자 인쇄기(1450년경). 이것은 단순한 인쇄 기술의 발전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의 권력 구조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인쇄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책이 극도로 희귀했다. 수도원의 수사들이 양피지에 손으로 필사하던 성경 한 권이 집 한 채 값이었다. 성경은 라틴어로만 존재했고,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성직자들 뿐이었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을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는 권력이 교회에 집중됐다. 종교적 진리의 헤게모니가 교황청에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하고 50년 만에 유럽 전역에 1,000만 권 이상의 책이 퍼졌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517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을 때, 그것이 불과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진 것은 인쇄기 덕분이었다. 종교개혁은 신학의 혁명이기 이전에 정보 혁명의 결과였다.

  구텐베르크에서 ChatGPT까지정보 혁명의 계보

1450  구텐베르크 인쇄기:

   누가 힘을 잃었나: 가톨릭 교회 (성경 해석의 독점권 상실)

   누가 힘을 얻었나: 민족 언어로 성경을 읽는 일반 신자, 개신교

 

1840  전신 (Telegraph):

   누가 힘을 잃었나: 물리적 우편망에 의존하던 상인과 금융업자

   누가 힘을 얻었나: 전신망을 먼저 장악한 로스차일드 가문, 통신사

 

1995  인터넷·이메일:

   누가 힘을 잃었나: 종합상사, 글로벌 지사망의 정보 독점

   누가 힘을 얻었나: 검색 엔진 (구글), 전자상거래 (아마존)

 

2007  스마트폰·앱스토어:

   누가 힘을 잃었나: 이동통신사, 피처폰 제조업체 (노키아, 모토로라)

   누가 힘을 얻었나: 플랫폼 기업 (애플, 구글, 페이스북, 우버)

 

2022  AI (ChatGPT):

   누가 힘을 잃을 것인가: 단순 반복 지식 노동 종사자

   누가 힘을 얻을 것인가: AI 인프라 기업, AI를 레버리지로 쓰는 전문가

 

패턴은 동일하다. 기술이 정보 이동의 비용을 낮출 때마다,

기존 독점자가 힘을 잃고 새로운 독점자가 등장한다.

 

산업혁명과 러다이트역사가 보여준 경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역사는 이미 200년 전에 보여줬다. 17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방직업의 기계화를 가져왔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방적기(Spinning Jenny), 에드먼드 카트라이트의 역직기(Power Loom)가 연달아 등장했다.

손으로 실을 잣고 베를 짜던 수천 명의 장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숙련된 직조공 한 명이 평생 배운 기술이 하루아침에 기계에게 대체됐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1811, 영국 중부 노팅엄셔에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시작됐다. 네드 러드(Ned Ludd)라는 인물이 자신의 직조 기계를 망치로 부쉈다는 전설에서 이름을 딴 이 운동의 참가자들은 야간에 공장에 잠입해 방직기를 부수고 불을 질렀다. 그들은 스스로를 '네드 러드의 군대'라 불렀고, '장군 러드(General Ludd)'라는 가상의 지도자를 내세웠다.

  러다이트 운동분노의 역사, 그리고 그 이후

1811~1816년 영국 노팅엄·요크셔·랭커셔 지역의 섬유 노동자들이 봉기했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고 절박했다:

  '기계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우리는 생계를 잃었다.'

  '이 기계들을 없애면 일자리가 돌아온다.'

 

영국 정부의 대응:

  - 군대 1 2천 명을 동원해 진압 (당시 나폴레옹 전쟁 병력의 절반)

  - 기계 파괴를 사형죄로 규정하는 '기계파괴법(Frame Breaking Act)' 제정

  - 1813년 주동자 17명 교수형

 

그럼에도 기술은 멈추지 않았다.

부수어진 기계는 더 개선된 기계로 교체됐다.

 

역설적 결과:

  산업혁명은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없앴지만,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공장 노동자, 철도 기사, 기계 수리공, 엔지니어, 관리자...

  기술은 일자리를 없앤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종류를 바꿨다.

 

오늘날 AI에 대한 두려움은 러다이트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도 같다.

 

러다이트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압 이후다. 기계 파괴 운동이 실패한 후, 새 시대의 주인공은 누가 됐는가. 기계를 가장 잘 다룬 사람들이었다. 기계를 이해하고, 그것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새 시대의 중간 계급을 형성했다. 기계공, 엔지니어, 공장 관리자. 이들은 러다이트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았다.

AI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소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활용 능력의 바탕에는 반드시 도메인 지식, 즉 해당 분야의 깊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 AI는 도구다. 도구를 쓰는 사람의 역량이 결과를 결정한다.

수천 페이지의 전쟁현장의 기억

다시 1990년대 현장으로 돌아가자. 그 시절 해외 프로젝트 입찰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세 가지였다. 첫째, 끈기였다. 수천 페이지 서류를 팀원들과 함께 밤새 작성하는 체력과 집중력. 둘째, 현지 관계였다. 발주처의 담당자와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통해 경쟁사보다 먼저 정보를 얻는 능력. 셋째, 판단력이었다. 방대한 서류 속에서 핵심을 짚고, 발주처가 진짜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통찰.

이 세 가지 중 디지털 기술로 대체된 것은 하나다. 첫 번째인 끈기, 즉 서류 작업의 물리적 노력이다. 지금은 AI가 초안을 잡아주고, 소프트웨어가 서식을 자동화하고, 디지털 제출이 인쇄·복사·운반을 없앴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신뢰를 쌓는 것과 핵심을 판단하는 것. 이것은 기술이 대체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배운 협상의 진실

중동에서의 한 민간 프로젝트 협상 자리. 상대방 발주처 담당자는 처음부터 냉랭했다. 우리는 정보경쟁에서 뒤쳐져서 출발이 늦었던 프로젝트. 협상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 상사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유럽 기업과 협상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회의 첫날, 우리는 제안서와 가격을 제시했다. 반응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약속도 없던 방문을 혼자 했고 담당자를 찾아가 커피를 같이 마셨다.

프로젝트관련 사항들, 현장관리와 우리의 강점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프로젝트를 통해 기여 할 수 있는 것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 가족 이야기, 그 나라의 역사 이야기 등등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가격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잇었으니까.

 

사흘째, 담당자가 먼저 말했다.

"당신네 회사가 우리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격을 조금만 조정할 수 있다면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계약은 성사됐다. 경쟁사보다 가격이 높았음에도.

 

전통적 신뢰: 관계는 전략보다 앞섰고, 신뢰는 정보보다 먼저였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신뢰의 차원이 하나 더 추가됐다.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생겼다. 바로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AI가 쏟아내는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에,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AI가 만들어낸 환각(hallucination)인지를 판별하는 능력이 생사를 가르는 경쟁력이 됐다. 사람 간의 신뢰를 쌓는 것,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판별하는 것. 이 두 가지 신뢰가 AI 시대 비즈니스의 두 축이다.

 

 

딥페이크 영상, AI가 쓴 가짜 뉴스, 조작된 데이터. 상대방이 보내온 프로젝트 제안서가 진짜인지, AI로 부풀린 숫자인지. 협상 자리에서 상대방 발언이 회사의 공식 입장인지, 즉흥적 발언인지. 이 모든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능력이 이제 비즈니스의 생존 역량이다.

변화의 첫 번째 법칙: 도구는 바뀐다, 사람은 남는다

아날로그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지속성'이다. 텔렉스가 팩스로, 팩스가 이메일로, 이메일이 메신저로 바뀌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의 신뢰도, 받는 사람의 관심,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다.

1990년에 신뢰할 수 없었던 공급업체는 2024 AI를 쓴다고 해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가 되지 않는다. 1990년에 진지하게 관계를 만든 파트너는 2024년에도 그 관계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도구는 세대마다 바뀌지만, 사람의 역사는 축적된다.

  아날로그 시대 비즈니스의 세 가지 교훈

불편함이 진입 장벽이다.

   국제 입찰 서류를 가방 10개로 제출하는 시절,

   그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는 회사가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불편함은 필터였다. 의지 있는 자만 통과시켰다.

 

정보는 발로 얻는 것이었다.

   현지에 직접 가고, 사람을 직접 만나고, 현장을 눈으로 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정보에는 온라인으로 얻을 수 없는 맥락이 있었다.

   온도, 분위기, 상대방의 눈빛, 행간의 의미.

   디지털 시대에도 이 '맥락 읽기' 능력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뢰는 시간의 함수다.

   3, 5, 10년의 관계가 쌓여 계약이 됐다.

   그 신뢰는 단숨에 얻을 수 없었고, 단번에 잃을 수도 있었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어도, 신뢰가 쌓이는 속도는 바뀌지 않는다.

 

정보를 가진 자가 시장을 가졌다. 그 시대의 비즈니스는 정보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의 뒤에는 항상 신뢰의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신뢰의 전쟁에서는, 경험의 깊이가 유일한 무기였다.

 

 

[Pivot Asset Box] 변곡점 이전의 세계를 기억하는가

l   도메인 역량: 정보 이동이 느릴수록현장 운영력과 문서/입찰 실무가 경쟁력이 된다.

l   관계 자본: 정보는 관계를 통해 먼저 온다. 발주처·에이전트·현지 네트워크가 곧 우위다.

l   재정 런웨이: 통신/문서/출장 비용이 높은 시대엔버틸 돈이 곧 선택지다.

l   타이밍 감각: 느린 시대에도먼저 아는 사람이 이긴다. 정보 선점이 타이밍이다.

l   심리적 자본: 수천 페이지를 버티는 체력, 반복을 견디는 멘탈이 실전 자산이다.

 

이 변곡점 이전의 승부처는 관계 자본 + 심리적 자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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